키는 유전이다 — 노력은 의미 없는가
네덜란드인은 왜 키가 크고, 쌍둥이 연구는 무엇을 증명했나
"키 크려면 우유 많이 마셔", "성장판 닫히기 전에 농구해", "잠을 많이 자야 키가 커" — 한번쯤 들어봤을 말들이다. 그런데 과학적으로 보면, 키는 거의 유전으로 결정된다는 증거가 압도적으로 많다.
일란성 쌍둥이 연구 — 가장 강력한 증거
유전의 영향을 측정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일란성 쌍둥이를 다른 환경에서 키운 후 비교하는 것이다.
미네소타 쌍둥이 연구(Minnesota Study of Twins Reared Apart)는 1979년부터 수십 년간 진행된 대규모 연구다. 태어나자마자 분리되어 다른 가정에 입양된 일란성 쌍둥이 수백 쌍을 추적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한쪽은 부유한 가정에서, 다른 한쪽은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는데 성인 키 차이가 평균 1~2cm 이내였다. 같은 집에서 자란 이란성 쌍둥이보다 다른 집에서 자란 일란성 쌍둥이가 키가 더 비슷했다.
네덜란드 —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나라
네덜란드 남성 평균 키는 약 182.5cm로 세계 1위다. 150년 전만 해도 네덜란드인은 유럽에서 키가 작은 편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유전적 자연선택 가설: 2015년 런던 위생열대의학대학원 연구에 따르면, 네덜란드에서는 키가 큰 남성이 더 많은 자녀를 남겼다. 7대에 걸쳐 약 94,500명을 분석한 결과, 키 큰 남성의 생식 성공률이 높았다. 즉, 자연선택으로 "키 큰 유전자"가 집중된 것이다.
영양 개선도 물론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같은 시기 영양이 개선된 다른 유럽 국가들(프랑스, 이탈리아)은 네덜란드만큼 키가 커지지 않았다. 영양은 전제 조건이고, 유전자가 실제 키를 결정한 셈이다.
GWAS 연구 — 키에 관여하는 유전자 수천 개 발견
2022년 네이처(Nature)에 발표된 대규모 GWAS(Genome-Wide Association Study)에서는 540만 명의 유전 데이터를 분석하여 키에 관여하는 12,111개의 유전 변이(SNP)를 식별했다. 이 유전 변이들만으로 개인 키의 40%를 예측할 수 있었다.
여기서 40%라는 숫자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키의 40%만 유전"이라는 뜻이 아니다. 현재 기술로 식별한 유전 변이만으로 40%를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고, 아직 발견되지 않은 유전 변이까지 포함하면 80~90% 이상이 유전이라는 것이 학계 컨센서스다.
유전율(Heritability) 숫자 정리
국가별·연구별로 키의 유전율(heritability) 추정치가 다르다.
선진국 기준: 80~90%. 영양이 충분한 환경에서는 개인 간 키 차이의 대부분이 유전으로 설명된다.
개발도상국 기준: 60~70%. 영양 부족이 성장을 제한하기 때문에, 환경 요인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커진다.
핵심은 이것이다. 영양이 충분하면 유전이 거의 전부를 결정한다. 영양이 부족하면 유전적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할 뿐, 유전자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 vs 남한 — 같은 유전자, 다른 영양
한반도는 이 논쟁의 자연 실험장이다. 남북한은 유전적으로 거의 동일한 집단인데, 분단 후 영양 상태가 극단적으로 달라졌다.
현재 남한 20대 남성 평균 키는 약 173.5cm, 북한은 약 165cm로 8cm 이상 차이가 난다. 이것은 "환경이 중요하다"는 증거처럼 보인다.
그런데 탈북 가정의 자녀 연구를 보면, 남한에서 태어나고 자란 탈북민 2세는 남한 평균과 거의 차이가 없다. 같은 유전자에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면 키가 정상으로 돌아온다. 환경은 유전적 잠재력을 "열어주는 열쇠"이지, 키 자체를 결정하는 요인은 아니다.
일본의 키 변화 — 영양 개선의 한계
일본 남성 평균 키는 1950년대 160cm에서 2000년대 171cm로 약 11cm 증가했다. 전후 영양 개선의 극적인 효과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더 이상 키가 커지지 않고 있다. 영양 상태가 더 나빠진 것이 아닌데도 정체됐다. 이것은 유전적 상한에 도달했다는 증거다. 영양이 충분해지면 그 이상은 유전자가 허용하지 않는다.
결론이 아닌 정리
숫자를 요약하면:
선진국(충분한 영양): 유전 80~90%, 환경 10~20%
개발도상국(영양 부족): 유전 60~70%, 환경 30~40%
극단적 영양 결핍: 유전적 잠재력 자체가 발현되지 못함
"키는 유전이다"는 틀린 말이 아니다. 다만 더 정확하게 말하면 "키의 상한은 유전이 결정하고, 영양은 그 상한에 도달할 수 있게 해주는 조건"이다.
우유를 많이 마시면 키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 우유를 안 마시면(영양이 부족하면) 될 수 있는 키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 과학적 결론에 가깝다.
양쪽 주장
유전파: 일란성 쌍둥이 분리 양육 연구에서 성인 키 차이 1~2cm 이내
유전파: GWAS 연구에서 키 관련 유전 변이 12,111개 발견, 학계 컨센서스 80~90%
유전파: 네덜란드의 자연선택 — 키 큰 남성의 생식 성공률이 높았음
환경파: 남북한 8cm 차이 — 같은 유전자, 다른 영양이 키 차이 만듦
핵심: 영양은 유전적 상한에 도달하는 조건이지, 키를 결정하는 요인이 아니다
장점
- ✓ 쌍둥이 연구, GWAS, 가계 연구 등 모든 과학적 증거가 유전 80~90% 지지
- ✓ 네덜란드 자연선택 연구 — 유전자 풀 자체가 키를 결정하는 사례
- ✓ 일본 키 정체 현상 — 영양이 충분해져도 유전적 상한 이상 자라지 않음
단점
- ✗ 남북한 8cm 차이는 환경(영양)이 키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증거
- ✗ 개발도상국에서는 유전율이 60~70%로 떨어짐 — 환경 30~40%
- ✗ 성장기 수면, 운동, 스트레스 등이 성장호르몬 분비에 영향 — 완전 무시 불가